타르 : 클덕의 클덕을위한 클덕영화(클덕아니면 재미없음)

이 영화를 검색하면 권력과 욕망에 관한 영화라느니, '여성 주연' 영화라느니(문자 그대로는 맞긴 한데 아닌 이유는 후술하겠다), 복잡한 화두를 던지는 영화라느니 하는 분석들이 나오는데, 다 틀렸다. 이건 클덕용 블랙코미디 영화이다. 단순히 교양 수준으로 클래식을 듣는 정도로는 웃을 수 없는 지휘자와 악단별로 녹음을 비교하고 음반을 사는 인간들을 위한 영화라는 뜻이다. 이런 영화를 권력구도에 관한 영화라고 하니 당연히 모양새가 이상하고 재미가 없고 결말이 최악이라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설명해야하는 개그야 말로 실패한 개그라지만, 이 영화가 왜 블랙코미디인지 적어보도록 하겠다(당연하지만 모든 내용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음).

영화는 타르가 아바도의 말러 5번을 오마주 하려고 용을 쓰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총보 커버를 아바도의 것과 같은 초록색으로 바꾸고, 연필을 고르고, 의자에 앉아서 자세를 잡아보기도 한다. 아바도의 말러가 좋은건 맞는데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따라하니 웃겼는데-여기서부터 아바도의 말러 앨범 커버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는 관문이 있다. 그런데 말이다, 인격자로 평이 좋았던 아바도는 말년에 두집 살림 한 것이 밝혀져 망신을 당했다. 난 이것도 복선이라고 본다. 이 영화는 절대 친절하지 않다.

명반인건 맞다. 한 번쯤은 들어보길.


타르가 인터뷰에 대답하는 것으로 영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는데, 초장부터 심상치 않다. 클래식계에서 여성형 명사로 사람을 구분하지 않는 날이 올까요? 에 대한 질문에 타르 왈

 "누군가가 마에스트로를 마에스트라로 대체해야한다고 하면 이상할 거 같아요. 우주비행사를 아스트로넷이라고하진 않잖아요 하지만 성 편견에 관한 문제에서는 저는 불만이 없어요. 마린 알솝, 조앤 팔레타도 마찬가지일거에요. 로렌스 에퀼베이, 나살라에 스투즈맨도요. 이전시대에 정말 훌륭한 여성들이 있었기 때문이죠. 진짜 세상을 바꾼 여성들 말이에요."

인터뷰어가 타르가 '여성' 지휘자이기 때문에 한 질문인데,  이 답변의 화자가 남성이라고 해도 어색할 것 없는 답변이다. 타르는 소위 '여성 의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타르가 성공한 예시로 드는 나디아 블랑제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음악인'의 범주에 들어가기보단 교육자에 들어가기도 하고. 실패한 예시로 든 안토니아 브리코는 오히려 여성 최초로 '뉴욕필하모닉'을 지휘한 사람이다. 분명 여성이자 커밍아웃한 레즈비언이기에 고생을 하긴 했지만, 지금의 타르는 기득권에 완전히 동기화된 음악인일 뿐이다. 뒤에 바로 이어지는 엘리엇과의 대화에서도 여성 지휘자를 지원하기 위해 본인이 만든 '아코디언'에 대해서도 이제 여자만 받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 다음으로 내가 육성으로 웃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던 장면이 나오는데, 마스터 클래스에서 수업하는 타르를 보여준다. 타르가 한 유색인종 학생 맥스에게 바흐에 대해 묻자 학생은 그가 이성애자 백인이라서 싫다는 답변을 한다. 그 이후 타르의 답이 걸작이다.

맥스: 솔직히 유색인종이자 팬젠더로서 바흐의 여성혐오적인 삶을 생각했을 때 그 음악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힘들어요.

타르: 그게 무슨 뜻이지?

맥스: 바흐는 20명이상의 아이를 낳지 않았나요?

타르: 미안하지만 부부침실에서의 기술과 B단조가 무슨 상관인지 잘 모르겠지만 자네의 선택이니까. 명심해. 그 선택으로 인해 시야가 좁아질 수 있어. 수용 가능한것과 불가능한것을 구분하는게 오늘날 많은 오케스트라의 모습이지. 일반인들에게 곡을 골라주는걸 대단한 권리로 생각해. 이성애자이자 오스트리아계 독일인 기독교도 백인들이 만든 클래식 음악이 우리를 개별적으로나 집단적으로 우월하게 할까? 그리고 그걸 누가 결정할 수 있을까? 베토밴은 어때? 그를 좋아하나? 왜냐하면 레즈비언으로서 베토벤이란 사람은 잘모르겠거든.

학생 :하지만 백인, 남성, 시스젠더 작곡가는 저랑 안맞아요. 에드가드 바레즈는 괜찮은 것 같아요.

타르 : 그러면 바레즈가 이런말을 한것도 알겠네. "재즈는 유대인에게 착취당한 흑인들의 상품이다." 제리 골드스미스도 막지 못해서 혹성탈출을 빼앗겼잖아. 권위에 맞서려는 행위가 잘못 표출될 때의 문제점은 만약 바흐의 재능이 그의 성별, 출생지, 종교 성정체성으로 평가절하된다면 누구든 그럴수 있어. 자네를 평가할때 어떤 기준을 내세우길 바라지? 자네의 악보해석과 작대기 기술외에 더 있나? 좋아 맥스의 기준을 한번 생각해봅시다 안나 소발스도티르로 해보자고. 두 가지 관찰 결과에 동의할 수 있을까? 첫째, 안나는 아이슬란드 출신이다. 둘째, 발도로프 교육식(참고로 이 영화의 음악감독은 힐두르 구드나도티르로 아이슬란드 출신이다)으로 아주 섹시한 여성이다. 손 들어봐 . 자, 그럼 피아노앞으로 시선을 돌려서 그러한 것들이 우리 앞에 있는 사람과 어떻게 관련될지 한번 생각해보자고. 자네 영혼의 설계자는 소셜 미디어인 것 같아. 음악을 지휘하려면 작곡가를 존중해야해. 자네 자신과 자아 정체성도 승화해야 하고 대중과 신 앞에 서서 스스로를 지워야 해.

맥스는 바흐가 20명의 아이를 낳은 것은 알지만 첫번째 부인과 사별해서 두번째 부인이 있었고, 살아남은 아이는 10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모르는 것 같다. 그리고 소위 '젠더'에 대한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모두가 '시스젠더'이던 시절의 인물을 두고 시스젠더라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라는 표현도 부적절하다. 이미 음반으로 찍혀나올 정도로 권위를 인정받은 음악을 들을 때 이 작곡가의 '젠더'가 무엇인지, 가족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누가 신경쓰겠는가? 실황이라 기침이 거슬린다 호른이 삑사리가 났다 이런 생각이나 하지(나중엔 뭘 연주하는지보다도 지휘자와 악단조합만 보고 가는 경우도 생긴다). 그리고 바흐에 대한 질문 이전에 좋아하는 연주자에 대해 물었는데, 이때 맥스의 답은 '사라 장'이었다. 고로 맥스가 좋아하는 음악인은 '사라 장'과 '에드가드 바레즈'인데, 이건 소위 힙스터픽이라는 것이다. 사라 장은 유명하긴 하지만, 2010년대 이후 주요 무대들에서 사라진지 오래인데 2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 좋아하는 바이올리니스트에 나오기는 약간 애매한 감이 있다. 에드가드 바레즈를  꼽은 이유도 전위음악가에 시스젠더지만 금방 이혼한 사람이라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음악 외의 요소에 지나치게 매몰되어 어른들 말로 MZ식 접근을 하는 맥스에게 타르는 "자네 영혼의 설계자는 소셜 미디어인 것 같다." 라는 말로 마무리한다.


첼로 자리를 두고 블라인드 오디션을 하는데, 타르는 화장실에서 우연히 올가를 마주치고 신발을 기억해두었다가 점수를 바꾼다. 그리고 올가와 사심이 가득한 식사자리를 마련하면서 음악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데 올가는 딴소리만 한다. 히틀러 집권 후 소련으로 추방된 독일사회주의 여성운동가 클라라 제트킨이라던가, 세계 여성의 날이라던가. 소련이 나온김에 소련의 전설적인 첼리스트인 로스트로포비치로 주제를 바꿔보려고 했는데, 여기서도 헛발질을 한다. 올가가 가장 좋아하는 첼리스트는 재클린 뒤 프레(로스트로포비치를 사사하긴 했다)이며 바렌보임의 런던 필하모닉 공연-엘가 콘체르토를 '유트브'로 보고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알아둬야 할 사실이, 뒤 프레와 바렌보임은 부부였으며 바렌보임은 그녀가 다발성 경화증에 걸리자 바람을 핀 개새끼라는 것이다. 물론 뒤 프레도 형부와 바람을 피우긴 했지만, 바렌보임의 인성을 생각해 보면 원인 제공자라 봐도 무방하다. 아무튼 뒤 프레는 여성 첼리스트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인물이고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엘가의 첼로 콘체르토를 명곡의 반열에 올려놓은 사람-타르의 시야에서는 안중에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망한 작업은 채식주의자라면 유일한 선택지라는 오이샐러드를 먹고 있던 타르에게 올가가 고기를 권하는것을 타르가 거절하면서 하이라이트를 찍는다. 

올가가 첼로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그 연주


타르는 자신과 내연관계인 프란체스카를 부지휘자로 승진시키기 위해 세바스찬에게 찾아가 이를 통보하고, 화가 난 세바스찬의 말꼬리를 잡고 부도덕하다고 비난하는데

"그 여자를 보자마자 내 자리는 끝이란 걸 알았죠. 어떻게 당신이 내 도덕성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죠?"

"저를 그렇게 생각한다면 더욱 더 여기 있을 이유가 없지 않나요?"

"용서해주세요 마에스트로."

"뭐를요 당신의 비굴함과 위선 미소가미를요?" 

"난 미소지니스트(여성혐오자)가 아니에요!"

"미소가미요. 결혼혐오를 말하죠. 안드리스(타르의 스승)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와 같은 층에 거주하고있잖아요."

어째 이 악단은 정상적인 연애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미소가미는 처음 들어보는 단어라 혹시 세바스찬의 꼬투리를 잡기 위해 즉석에서 지어낸 단어인가 했더니, 진짜 있는 단어더라. 그런데 1700년대에 조금 쓰이다 말은 단어이다. 고작 이 장면을 위해 '미소지니스트'와 발음이 유사한 17세기 영단어까지 꺼내오다니 집념이 대단하다 하겠다.


타르는 음반 녹음을 앞두고 기술자와 대화하는데 wav로 파일을 주겠다는데에 '관객들'이 듣는 걸로 듣고싶다며 mp3으로 달라고 한다. 20년대에 누가 mp3을 듣는가. 다 스트리밍이고 음반을 사는 사람들은 스피커로 듣지. 이러니 저러니 해도 시대에 뒤쳐지고있는 기성 음악가다.


지휘자로써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하고싶은 말 다하고 아내와 자식을 두고 문어발을 하던 타르는 맥스와의 마스터클래스의 장면을 교묘하게 편집한 클립이 나돌고, 내연관계로 발전했었으나 타르가 블랙리스트에 올린 크리스타가 자살하여 그 부모가 고소하기로 하면서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다. 타르는 조언을 구하러 안드리스를 만나러 가게 된다.

"학생이나 동료가 선생님의 의도를 오해해서 문제가 생겼던 적 있으세요?" 

"누가 내가 그랬대?" 

"아니오."

"지금 말하기엔 이미 늦었지. 난 이미 떠났으니까. 지미 레바인처럼 지휘대에서 끌려나오지 않아서 다행이야. 아니면 찰스 뒤투아처럼 사냥당하거나 말이야. 그런 질문을 한 의도가 있겠지?"

지미(제임스) 레바인이 누구냐, 미투운동때 10대 남성 다수를 성추행했다는 것이 밝혀져 사임한 미국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지휘자이다. 40여년간 있었기 때문에, 메트 오페라 영상을 검색하면 어지간하면 제임스 레바인이 인사하는걸 볼 수 있을 정도. 샤를 뒤투아 또한 다수의 여성으로부터 강간을 포함 성추행을 저지른 것이 드러나 쫓겨난 인간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안드리스가 레바인을 부르는 호칭은 친근한 호칭 '지미'이다.

 "뉴스를 보면 최근에 그런일이 많더라고요." 

"요즘은 혐의를 받는 즉시 유죄가 되어버리지. 그런 일은 한참 전인 푸르트뱅글러때도 있었어. 카라얀도 조금은 그랬고." 

"누가 더 훌륭한 지휘자인가요?"

"푸르트뱅글러와는 연주해본적없어. 내가 여기 처음 왔을땐 나이든 연주자들이 조용히 의견을 나눴지. 그들은 그 시대를 떠나보내고 싶어했지."

"전쟁을요?" 

"아니, 전후였어. 탈나치화 시대였지 누가 자네를 지목하면 모든 과정이 시작되는거야. 푸르트뱅글러는 나치였던적이 없어. 경례를 거부했고 나치의 노래도 지휘하지 않았고 하일 히틀러를 편지에 쓰지도 않았지. 히틀러한테 보내는 편지도 말이야. 하지만 그는 탈나치화대상이었어. 탈나치화 될 떄까지 그는 은퇴한 채로 시체들에게 연주했지."

"성적인 부적절 행위와 나치를 동일시하는건아니죠?"

"어느쪽이든 준비해둬야지. 수년간 난 내 구린내를 잘 간수해왔다고."

성적으로 부적절한 행위와 나치를 같은 선상에 올려놓다니 그 스승에 그 제자라 하겠다. 레바인과 뒤투아에 대한 온정적인 코멘트까지 말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스승은 구린내를 간수하는데 성공했지만, 타르는 그러지 못했다는 점이다. 


스캔들로 인해 악단에서 해임된 타르는 집에서도 쫓겨나고, 원래 지휘하기로 되어있던 공연의 대타로 들어간 엘리엇을 공격한 뒤 말 그대로 쫄딱 망해서 스태튼 아일랜드의 원래 살던 집으로 돌아간다. 어릴적 받은 메달을 목에 건 채 번스타인이 차이콥스키 5번의 의미를 설명해주는 비디오 하나를 보면서 우는데, 이 곡은 독소전쟁때 폭격맞으면서도 레닌그라드 방송관현악단이 끝까지 연주했던 곡이라 독일에 대한 '저항'의 의지가 담긴 곡이다. 타르가 이 곡을 들으면서 의지를 다지는 점 까지 자신의 논란은 '오해'라고 굳게 믿고 자신을 여기로 쫓아낸 사람들에게 '저항'의 의지를 품은 것을 엿볼 수 있겠다.


커리어를 거하게 말아먹은 타르는 필리핀에서 지휘를 하며 재기를 꿈꾼다. 그러나 좋은 마사지샵을 추천해달라는 말에 호텔 컨시어지는 '업소'를 소개해주고 타르의 선택을 기다리던 창녀들 중 하나와 눈이 마주치자 밖으로 달려나가 구토를 한다. 베를린의 지휘자(영화에 명확하게 나오진 않지만, 타르의 악단은 베를린 필하모닉이 배경으로 보이며 이는 굉장한 영향력을 가진 자리이다)라는 자리를 이용해 자신의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성적인 관계로 직업적 호의를 베풀었으니 행위 자체의 본질은 비슷하지 않은가? 그게 구역질나는 행위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아니면 아직도 자신이 '이런 수준'은 아니다 라고 생각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 영화는 타르가 '게임' OST의 지휘를 맡은 공연이 시작되는 것으로 끝난다. 지휘자-작곡가-악단으로 구성되는 클래식음악과 달리 게임음악은 작곡가와 유저의 플레이 경험으로 완성된다. 즉, 지휘자의 해석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앞에 마스터클래스에서 타르가 맥스에게 한 말을 기억하는가? 지휘자는 악보해석과 지휘로 결정된다고.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던 가치를 모두 빼앗기는 것이야말로 타르에게 있어 최악의 결말이다. 결말이 뜬금없고 게임음악을 폄하한다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던데, 클래식 음악과 상업 OST는 아예 다른 장르이다. 구성 요소도 다르고, 관객층도 다르다. 다만 여기에선 타르 본인이 경멸해 마지않던 상업음악으로 추방당했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제 5함대의 형제자매들이여, 시간이 됐다. 작별인사는 짧게 하겠다. 원래 말주변이 없다. 우주선에 탑승한 뒤로는 되돌릴 수 없다. 이 다음 너희들의 발이 닿는 곳은 새로운 땅일 것이다. 혹시 두려운 자가 있다면 우주선에서 내려라. 아무도 비난하지 않을테니."

타르는 우주선에서 내리지 않는 길을 선택했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원래의 자리와 가정을 되찾기 위해 모든 짓을 다 할것이다. 물론 타르가 진정으로 반성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끝없이 자신을 합리화 하며 복귀를 꿈꿀것이다.


이 영화는 타르가 여성이라서 겪는 문제에 집중하는 영화도 아니고(이 영화에서 그녀가 레즈비언이라는 점은 아내를 두고 문어발을 걸치는 데에서만 작동한다), 클래식 음악계라는 엘리트 세계가 가진 위선과 문제점을 비꼬는 영화다.  타르의 과시적인 태도, 스캔들, 권력 구조 안에서의 인간적 결함 등이 핍진성이 넘치다 못해 지구 어딘가에 있을 법한 느낌을 준다. 영화는 권력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자신과 주변을 파괴하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클래식계가 얼마나 견고하고 변화에 둔감한지를 이야기한다. 그래서 이 영화가 웃기려면 클래식 음악계와 지휘자들에 대한 어느 정도의 사전 지식이 필요하다. 보통은 좋아하는 '곡'은 있을지언정, '지휘자들'을 고르는 단계까지 오면 그건 '클덕'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에 대해 어떠한 설명도 해주지 않는다. 그러니 보통의 관객에겐 재미가 없고 결말도 이상한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모든 영화가 모든 관객만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듯이, 이런 '클덕'을 위한 영화가 나와 무척 재미있게 보았고, 기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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