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대 파리 밤 거리의 쿠튀르적 재현
메종 마르지엘라의 2024년 봄 쿠튀르 쇼가 주목받고 있다. 디올에서 쫓겨나 마르지엘라에게 스스로를 맞추던 갈리아노가 약 10년만에 주도권을 잡고 본인의 색을 드러내는데 제한을 해제했다고 봐야겠다. 브라사이의 사진을 그대로 옮겨온 것 같은 알렉상드르 3세 다리 밑에 지어진 바를 컨셉으로 한 세트장에서 그의 사진에 등장하는-도자기 인형과 같은 비현실적인 광택을 가진 팻 맥그라스의 메이크업을까지 한-부랑자, 동성연인, 댄서, 매춘부, 유령이 배회하는 쇼는 순식간에 SNS를 뒤덮었다.
2000년대에 쟁쟁하던 브랜드나 디자이너들이 헤드 디자이너를 교체하고도 지지부진하거나, 이미지 유지에 실패하거나(차브에 패배한 버버리와 같이), 아니면 지독한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것에 비하면 본인의 '폼'을 유지하는 능력만은 대단하다고 할 수 있겠다. 이 대표적인 매너리즘 브랜드가 돌체앤가바나인데, 아마 둘이 결별하고 나서부터 이랬던 것 같다(둘이 그럴거면 차라리 '계약연애'라도 해서 일할 때 만이라도 서로를 사랑한다고 자기암시를 거는 것이 비즈니스에 도움이 될 것).
마르지엘라는 24년 쇼는 브라사이의 20년대 파리 사진(Paris de Nuit)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히고 있다. 헝가리인 브라사이는 비와 안개가 낀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이방인로써의 정체성을 가지고 갱단, 매춘부, 레즈비언 클럽등을 다니며 아웃사이더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 '퇴폐적'인 사진들은 그야말로 갈리아노에게 최적의 소재라 할 수 있다. 세계대전을 겪었지만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던 20년대의 밤의 파리는 낭만으로 가득 차 있다(대공황이 있지만 그건 미국의 일이므로). 20년대긴 하지만 메이크업을 제외하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아르데코'의 세련됨이나 발랄함과는 거리가 먼데, 이는 브라사이의 피사체들이 그 세련됨을 바로 누릴 수 있는 상류층들도 아니거니와 의상이 전형적인 갈리아노 스타일- 코르셋과 엉덩이 패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과장된 실루엣과 연극적인 메이크업, 회화적인 색채와 텍스쳐의 조합-이기 때문이다.
'아웃사이더'들을 테마로 하고 있지만, 이 쇼는 엄청나게 귀족적이다. 쿠튀르 쇼의 속성이 그렇
긴 하지만 거의 모든 의상에서의 코르셋의 사용은 이들을 더이상 아웃사이더가 아닌 그를 흉내낸 자본가들의 복제품으로 존재하게 한다. 코르셋은 허리를 묶어놓기만 하는 게 아니라 허리에 연결된 모든 사지를 제대로 사용할 수 없게 만든다. 허리의 기동성이 제한되면 몸을 굽혀서 물건을 줍는 것도 힘들고 의자에 편히 기대어 휴식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코르셋은 그러고도 생활을 영위하는데 문제가 없는, 본인이 직접 노동을 하지 않는 계급의 전유물이다. 혹자는 코르셋의 레이스업 부분을 가지고 옛 서민 복식에도 이러한 요소가 있지 않냐고 할 수도 있겠다. 그건 재봉기술이 발전하지 않았던 시절 신체에 옷을 고정하기 위한 여밈 장치다. 현대 패션에서 레이스업이 있는 옷이나 신발들이 콘솔 지퍼를 같이 쓰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봐라.
현재는 구질구질하고, 미래는 두려우나 과거는 이미 지나간 일이기에 환상을 품기 가장 적절하다. 과거의 사람들보다 현대인들이 더 뛰어난 기술과 문명을 누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과거의 복식과 문화를 재현하고 취미로 삼고 있다. 그러나 과거 지배계층의 귀족적 속성은 현대인의 관점으로 그대로 소비하기엔 어딘가 부도덕한 느낌이 들기 마련인데, 이 부분은 마이너리티와 판타지를 더해서 감추고 패션업계들의 엘리트적 욕망을 귀신같이 잡아내서 쇼로 만든다는 점에서 갈리아노가 앵크루아야블의 현대적 구현에 있어서 가장 뛰어난 디자이너 중 한명이라는 사실은 부정하지 않겠다.
이 쇼의 메인 소재중 하나는 머킨(Merkin)이다. 한국에는 이런 개념이 없어서 디자이너가 제모를 하는 패션 모델들을 위해 특별히 고안한 '디자인한 음모' 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이건 갈리아노가 만들어낸 패션아이템이 아니라 '음모 가발'이다. 이 물건은 14-15세기에 매독의 유행으로 고안되었으며, 주로 사면발니를 퇴치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사면발니는 성 접촉에 의해 전염되므로 사면발니가 있는경우 성병검사를 권한다), 또는 매독에 감염된 것을 감추기 위해 음모를 면도한 매춘부들이 착용했다. 그외에도 외설을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는데, 실제 음모나 성기를 노출하는 것보다 문화적, 법적 패널티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이다. 또한, 예술가들의 성매수와 '매독'은 낭만적인 속성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으므로 이것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성산업에서 페티시적 요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은 덤이다. 이에 대해 '대담한', '숭고한','창의적인' 수식어를 붙이는 것은 패션과 포르노산업의 연관성에 대해 체면치레할 생각도 없어보인다. 쇼의 앞부분을 5분이나 차지하는 영상에서 앞꿈치를 받칠 수 있는 부분이 존재하지 않는 킬힐을 신고 깨진 유리조각 사이를 고통스러운듯이 딛는 발을 역재생까지 동원해서 핥는 씬은 낭만주의와 복고라는 단어로 포장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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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델, 잘 보면 가슴에 흉터가 있다...이걸 디테일이라고 해야할지... |
여성 모델들은 본래의 체모를 제거하고 페티시적 의미를 가진 음모 가발이나 착용하고(시어 드레스를 입은 모델들을 보면 머킨의 안정적인 핏을 위해, 그리고 샅이 접히는 부분에 라인이 보이면 안되니까 속바지를 입었다) '성적으로 디자인된' (반)나체로 걸어다니는데, 남자 모델들은 기껏해야 코르셋에 화장이 전부다. 남성의 코르셋은 18세기부터 존재했던 것이고 남성의 '여성용 코르셋'의 착용으로 새로움을 찾기엔 이 또한 18인치 코르셋을 입고 벌레스크 스트립쇼를 하는 드랙퀸이 있는 21세기엔 어불성설이다. 나체를 전시하는 것 자체로 예술적 의미를 가질 수 있던 시기는 아무리 길게 잡아도 sns와 메신저로 타인에게 마구잡이로 '고추 사진'을 보내는 이들의 범람으로 수명이 끝나지 않았던가?
맨 마지막에 '그웬돌린 크리스티'가 'Tall Girl 인지 빅걸 페티시(대충 키크고 힘센 여자가 섹스를 포함한 남자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페티시) 모델로 나오는 것 까지 뭘 하고 싶었는진 알겠는데, 2024년에 이렇게까지 시간과 돈을 갈아서 구현해야 할 일인가? 결과적으로 천문학적 비용을 들여서 만든 누군가의 컴퓨터 속 숨김처리된 소프트코어 포르노 컬렉션과 같아졌단 말이다.
Masion margiela Artisanal Collection 2024
John Galliano Artisanal Collection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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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r 2009 FW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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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Galliano 2009 FW |
그의 의상 기술자로의 능력이 대단한 것과는 별개로 이 쇼가 2024년에 필요한 이유는 모르겠다. 여러 부분에서 그의 예전 컬렉션-특히 메이크업 컨셉에서 09년 FW쇼를 노골적으로 닮기까지 했다. 자가복제도 못하는 디자이너들보단 낫지만 24년도에 이렇게 많은 주목과 찬사를 받을 이유는 못 된다. 성적인 소재로 도배를 했으니 '대중적인' 의미로는 관심을 끄는데 성공한 쇼지만, 자신이 일하고 있는 브랜드에 맞는 디자인을 했다는 점에서 갈리아노의 기존 마르지엘라 쇼들이 더 낫다. '갈리아노'만 있지 '마르지엘라'가 없다는 것이 이번 쇼의 가장 치명적인 점이다. 구성을 맞추기 위해 마르지엘라 특유의 얼굴을 가린 해체주의적 헤드피스를 얹은 옷 몇벌만이 마르지엘라 쇼라는 흔적을 갖고 있을 뿐이다. 갈리아노 스타일이 마음에 들어 마르지엘라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그가 떠나더라도 마르지엘라를 좋아할까? 이 쇼의 제목을 Masion margiela Artisanal Collection 2024가 아니라 John Galliano Artisanal Collection 2024로 바꿔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점에서 이 쇼의 성공은 반쪽짜리다.
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한다. 남을 모방하는 것이 두려워 타인의 작품을 공부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원래 있던 것과 똑같은 것을 만들어내는 우스꽝스러운 짓을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하는 시대에 거장이라는 이유로 이에서 보호받는 것은 단지 카르텔적인 이유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완전히 구식으로 보인다. 구식이라고 하니 너무 온건해 보이는데 2024년에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 염불외고 다니는 사람같아보인다는 소리다.
갈리아노는 반 유대주의적 폭언으로 11년에 디올에서 추방당했고, 디올의 광고모델이자 유대계 미국인인 나탈리 포트만으로부터 강력한 비난을 받았다. 사실, 그 폭언의 내용이 반유대주의가 아니었다면 아무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때 보여준 각종 인사들의 스탠스들만 봐도 23년 이스라엘-하마스전쟁에 서구권 국가들이 어떤 태도를 보여줄 지 알 수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가 마르지엘라로 패션계에 복귀하는데 약 2년정도 걸렸는데 패션계 치곤 용서하는데 오래 걸린 것 같긴 하다. 10년도 더 된 일이므로 그때는 조금 안타까웠으나 그냥 그대로 안타깝게 남아있는게 나을 뻔 했다. 입이 방정이라 잘린 비운의 천재 정도로 남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전통적인 쿠튀르 쇼의 수명은 20세기에 수명을 다 했다. 새로운 소재의 개발과 전시라는 위치는 섬유박람회들과 공학자들이 가져갔다. 이런 시대에 디자이너를 한다는 것은 분명히 힘든 일이지만 구시대에 안주하고 있을 핑계는 되지 않는다. 이렇게 쓰긴 했지만, 유감스럽게도 미켈레의 구찌보단 낫다. 적어도 모델들이 '성인여성' 처럼 보이긴 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P.S. 이번 쇼로 가수와 각종 조명, 무대적 장치로 고안한 패션쇼를 처음 본 사람들도 많은 것 같은데 이런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들이 더해진 패션쇼는 꽤 오래전부터 있엇다. 다만 비용적 문제때문에 잘 하지 않을 뿐이지. 이것보다 더 좋은 쇼들이 유튜브에 잔뜩 있으니 너무 감동받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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